잘 알려진 명화의 이미지가 다른 옷을 입고 출현하였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를테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나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같은 것. 수백 년의 시공을 가로질러 이처럼 낯익은 명화들이 우리의 눈앞에 다른 모습을 띠고 나타났을 때, 우리는 창작의 의미를 되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창작이란 독창성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창성이 없어 보이는 어떤 것이 창작의 이름으로 출현을 하였다면?
대저 독창성(originality)이란 선례가 없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흔히 독창성은 유일무이성(唯一無二性)으로 불리기도 한다. 세상 그 어디에도 비슷한 것이 없는 오로지 하나 뿐인 독창적인 작품, 그래서 흔히 벌어지는 표절시비는 모두 이 독창성의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된다.
권여현의 개인전은 다소 해묵어 보이는 이 쟁점에 다시 불을 지핀 계기가 되었다. 우선 명제가 재미있다. “고금을 가로지르다”. 이 주제에 나(작가)를 중심으로 동양과 서양, 어제와 오늘을 살피자는 작가의 의도가 깔려있음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일. 그런데 문제는 전시장 전체에 흐르는 노골적인 의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사용하고 있는 ‘인용(appropriation)’의 창작 방법론은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도 결코 새롭지만은 않은 전략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1992년에 무역센터 현대미술관에서 <창작과 인용>이란 전시회를 기획한 바 있는데, 권여현은 그 당시 초대작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인용’과 관련하여 볼 때,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이를 실천에 옮겼던, 이 분야에 관한 한 꽤 관록 있는 작가인 셈이다.
이 인용의 전략이 해묵은 것임을 알면서도 이를 주요한 방법론으로 삼았다? 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작품의 전편에 흐르는 키치적 분위기와 유머, 그리고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출하는 자의식의 과잉이다. 그에게는 인용에 관한 한, 이미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 야스마사 모리무라(森村泰昌)의 정밀성 같은 것이 결여돼 있다. 모리무라가 정교한 분장을 통해 원본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을 보여준 반면, 권여현은 자신의 초상사진을 작품의 일부로 대입시킨다. 물론 몇몇 작품에서 페인팅 기법을 통해 신체의 일부를 보완하는 경우도 있지만(가령 얼굴 사진에 수염을 그려 넣는 것과 같은 따위), 확대된 사진의 허술함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여기서 필자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그의 작품 전편에 나타나고 있는 이 생경함과 의도된 조잡함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모리무라의 정교함과는 현격히 다른 권여현 작업의 미적 특질인 것이다. 이 특징들은 이번 출품작들의 또 다른 특징인 키치적 성격을 부각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 키치적 성격이 종합적으로 나타난 것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너의 머리 속에 존재한다>라는 긴 제목의 작품이다. 이미 제목 자체가 데카르트의 잘 알려진 명제(<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패러디하고 있거니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비드상(속옷 차림의 여인상), 반가사유상(권여현상), 그리고 반가사유상이 깔고 앉은 변기(마르셀 뒤샹의 <변기>를 패러디한 것) 등등은 조잡한 상태로 묘사돼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묘사방법은 다분히 의도적인 키치적 방법론이 아닐 수 없다.
자의식은 권여현의 작품을 관류하는 키워드이다. 이미 80년대 중반의 작업 초기부터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이 경향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을 일련의 스타들과 동일시하는 일종의 편집증적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반가사유상을 비롯하여 시모네 마르티니의 <갈보리 가는 길>, 후베르트, 얀 반 아이크의 <최후의 심판>, 사마치오의 <낙원추방>에 등장하는 예수를 자신의 초상사진으로 대체한 것 등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예수가 열 두 제자를 거느렸듯이, 권여현은 제자들과 함께 한 ‘사제동행세미나’ 형식을 빌려 이 퍼포먼스를 행했다. 그러니까 이번 전시회의 출품작들은 한편으로 보면 이 퍼포먼스의 결과물인 셈이다. 이번 전시회 출품작들을 위해 그가 참고한 명화의 원본들은 광범위하다. 미켈란젤로, 뒤러, 고야, 들라크로와, 앵그르, 밀레를 비롯하여 단원과 혜원의 풍속도, 구한말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그 출전은 그야말로 동서고금에 걸쳐 있다. 원전을 고르고, 분장하고, 연출하고, 사진을 찍고, 다시 그 위에 그려서 새로운 작품을 각색하기까지 방대한 작업을 하면서 작가가 직면했을 고뇌와 수고가 손에 잡힐 듯이 전달돼 온다. 그러나 단순히 재치와 순발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고전 해석에 따른 진지함과 장중함의 무게가 요구되는 것 또한 그의 근작이 지닌 어쩔 수 없는 한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