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으로 나타내는 고요한 열정

이지향

 


·세잔느· 적인 입장에서

작품에 대한 칭찬으로 인터뷰를 시작하자 권여현은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를 시기하고 질투했던 살리에르처럼 ·자신은 가지지 못한 재능을 뛰어넘기 위해 끊임없이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 이라며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타고난 소질보다는 교육을 잘 받았을 뿐이라고 말이다.

“예전에 절 가르치셨던 선생님은 여러 번 고쳐서 완성된 제 그림을 보시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 같다’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만큼 전 소질이 있다기 보다는 교육을 잘 받아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은 도시락을 싸들고 작업실에 출근하여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고, 저녁엔 마감 기도로 하루를 마치는, 평생 반복된 삶을 살았던 세잔느를 ‘일하는 개’라고 불렀다고 해요. 그런데 전 그 세잔느와 같은 입장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그림은 쌓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일반적으로 그림의 힘은 직접 경험이 이루어졌을 때 강해진다고들 하지만 권여현은 간접적인 노력에 의해 쌓여진 체험 역시 중요하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중섭이나 고흐처럼 역경을 이겨내고, 자기 작품에 빠져 온몸으로 부딪혀 그림을 그렸던 화가도 있지만 저는 경험의 영역을 굉장히 넓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읽고 냄새 맡는 것 등 감각 기관을 통해 전달되는 체험 역시 무한한 표현력과 상상력을 가져다 주니까요”

여러 경로를 통해 습득된 경험과 지식은 오랜 세월 차곡차곡 쌓이고 새롭게 짜깁기되면서 자연스레 그에게 자기성장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화폭에 담아낸 그림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발자취가 되었다.

 

‘자아를 찾아서’

권여현은 자화상을 많이 그린다. 사람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그는 지금까지 ‘자아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는 작업을 하면서, 그 해답을 사회, 종교, 역사, 과학, 욕망, 사랑의 6가지를 통해 풀어나가고 있다.

“본인은 자신의 자아를 세밀하게는 볼 수 있지만 전체를 보기 어렵고, 타인은 전체는 보지만 세밀하게는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사회적 가면(페르소나 - persona)' 이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페르소나 중에서 특정적이고 우월한 것이 자신을 비춰지는 것이 아닐까요. 마찬가지로 다중적 자아 중 우월한 것이 자신의 자아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그린 자아의 개념은 개인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보편적 자아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자아는 무수하게 많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는 것이니까요.”

권여현은 실존문제를 다룬 초기 작업부터 지금까지 자아에 대해 여전히 고심하고 있다. 끊임없이 질문을 제시하며, 알 수 없고 규정할 수 없는 자아를 그림으로 보여줌으로써 단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다중인격체로서 자신의 존재를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하다.

“X축이라는 공간과 Y축이라는 시간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Y축은 제가 살아온 역사이고, X축은 그동안 지나왔던 수많은 공간들이라고 말이죠. X,Y 축이 만나는 수많은 점들이 에피소드가 되어 제 그림으로 살아나는 것이죠.”

자아를 찾아가는 모티브(motive)로 권여현은 ‘깔때기(funnel)'를 사용하였다.

“한국인의 이동경로를 살펴보면서 찾아낸 유물들 중에 물맷돌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물맷돌을 자세히 연구하면서 깔때기라는 것을 유추해 내게 되었고 미니멀화, 기호화시켜서 화면에 그려 넣기 시작했습니다. 깔때기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서로 연관성이 없는 사건들이 산재하는 혼돈의 세계와 논리적으로 정동된 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가 된다고 할 수 있죠.”

그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캔버스라는 틀 안에 자신을 묶어두지 않고 조각, 퍼포먼스 등의 다양한 표현방식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한 색다른 시도는 보편적 언어, 즉 수비게 이해할 수 있는 이미지를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1년 여의 미국 생활

그에게 화가의 길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미술을 시작하여 주위의 칭찬과 격려 속에서 다른 것은 생각할 사이도 없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하였다.

“참 내성적인 학생이었어요. 어렸을 때도 작은 화실에서 조용히 그림만 그렸고, 혼자 만화책 그리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죠.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지방에서 자란 탓인지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상대적인 빈곤감도 느꼈고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있는 듯 없는 듯한 생활을 하면서 보냈죠.”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는 않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성실히 학교생활을 했고 많은 생각과 깊은 관찰력을 키워갔다.

“그 무렵 누나 집에서 지냈었는데 학교까지 상당한 거리가 있었죠. 집에서 출발할 때 한 가지 단어를 떠올려 계속 생각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더 많은 생각을 낳게 되고 나중엔 하나의 개념으로 자리를 잡아가더군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로, 잔디밭에 앉아 뭔가를 고민하고 사물을 관찰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지내다 뒤늦게 말문이 트이게 되었죠. 어느 날 과 엠티를 가서 과거에 있었던 일들, 아주 사소한 일들을 기억해 내는 저를 보고 과 친구들이 놀랐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는 자신의 대학 생활을 스스로 ‘조용한 학교생활’이었다고 말하지만 4학년 때 벌써 그는 창작 미협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1986년 동아미술상을 수상했을 때는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는 그 후로도 계속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지게 되었다.

권여현의 작품들은 점차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화가로서의 위치도 어느덧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의 작품이 너무 서구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고, 컬러 또한 현란하다는 등 비판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러자 그는 새로운 것을 공부해 보고 자신의 그림을 심도 있게 바라보기 위해 유학이라는 길을 선택하였다.

“3년 정도의 생활비를 들고 갔었죠. 그런데 공부를 하다보니 그림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금방 학업을 중단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금전적인 문제로 처음에 계획했던 3년 동안은 잊지 못했지만 혼자 작업하면서 여행을 참 많이 했거든요. 그 1년 동안의 경험은 제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교수로서 그는 미국 유학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지금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되돌려 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더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되고 상호보완적인 입장이 되어 여러 가지를 배우게 된다고 한다.

항상 새로운 작업에 도전하는 그는 수업 방식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수업 중에 ‘사제동행수업’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교수와 제자가 함께 발상을 공유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수업으로, 학생이나 제 자신에게도 상호보완적인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죠. 자유로운 발상을 돕기 위해 3학년 때까지는 회화 이외의 표현의 다양성을 유도합니다.”

그는 절실하게 ‘1사제 주의’를 원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남들보다 뛰어난 ‘기억력’이란 무기를 휘두른다.

“저는 상당히 기억력이 좋은 편에 속해요.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거든요. 그래서 학생 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찾아주기 위해 3학년 말부터는 자신만의 전시공간을 줍니다. 작가들이 개인전 하듯 똑같이 말이죠.”

그는 미국에서 보았던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가르치고 같이 찾으면서 뚜렷한 자시세계를 가질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갈 것이다.

3월에 있을 전시를 위해 제자들과 현재 공동작업을 하고 있는 권여현. 그는 아직도 갈증이 풀리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뭔가에 도전해 보고 부딪혀 보고픈 욕구가 여전히 꿈틀거린다. 많은 양의 작업과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지만 여전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많은 권여현. 그에게 과연 또 무엇이 새로운 변화와 왕성한 에너지를 줄 수 있을까.

 

대선배가 전하는 메시지

생각을 깊이 하는 버릇을 들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반응이 너무 빠르게 온다. 이야기 하는 것을 가만히 들어보아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조합해 놓은 듯하다. 마치 얕은 물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직접 경험의 영역이 넓으면 좋겠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접 경험은 생각의 깊이를 줄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며 앞으로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