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현은 최근작에서 자신의 과거사진들을 작품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사용화고 있다.그의 어린시절 사진들, 그의 학창시절 사진들을 194 X 120cm크기로 확대인화하여 사실적으로 그려진 작품 한 면, 추상화처럼 그린 작품 한 면과 더불어 3면화를 구성하고 있다.
한 장의 사진을 보자. 따뜻한 겨울햇볕이 깊이 들고 있느 토방마루를 배경으로 너댓살쯤 되는 형제가 서있다. 꽤나 모던한 무늬 털스웨처를 입고, 귀걸이를 머리위로 걷은 모자를 쓰고 있는 형과 반코트를 입고 방울달린 모자를 쓰고 있는 아우가 있다.
아우는 찍는 순간 살짝 귀여운 몸짓을 하고 있다. 옷차림이나 새 것인 듯한 운동화는 혹시 설날을 맞이한 것은 아니었나 라고 새앆하게 하며, 아우가 들고 있는 아무나 갖지 못하던 프라스틱 장난감 자동차는 아직도 부럽다. 배경의 세 칸짜리 초가집의 것일 듯한 좁은 토방마루에 눈길이 가면 누구나 어릴 때 한 번쯤은 떨어져본 경험을 되살린다. 이 귀여운 사진은 모두가 가난했던 동시대인인 우리를 동일하거나 유사한 과거로 뜰어들이고, 아련한 옛기억을 되살아나게 한다.
이 사진은 명암차가 커서 세부가 많이 생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기억 모두를 불러일으키는 직접성과 현장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도 생생한 사진으로 남은 과거는 더욱 허망하다. 사진 내의 사소한 세부까지도 우리에게 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사진이 순간의 진실로, 어느 것도 생략되거나 조작된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주는 것과 동시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있었음’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의 고향 마을은 합천댐물에 가라앉았고, 돌아갈 수 없는 고향마을은 몇장의 사진 속의 추억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다. 그의 부모 일가친척이 삶을 꾸려왔던 고향집의 추억이 그에게는 폐부를 찌르는 아픔처럼 남아있을 것이다.
이들 꼬마형제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시간은 10년을 훌쩍 뛰어넘고, 도시의 어느 주택가를 배경으로 한 옥상 난간 위에 앉아있는 형제를 그린 그림으로 연결된다. 사소한 것들의 기계적인 면밀한 사진기록이 아닌 작가의 감정이 길러내어 조금 단순화된 구상인물화이다. 이 그림에는 취사선택하는 묘사를 통한 현실의 굴절이 있으며, 감정으로 걸러진 이상화도 있기 때문에 사진보다는 덜 순간적이다. 사진의 즉각성과 생생함은 이 그림의 완만성, 숙성됨과 서로 충돌하며 교차한다. 재료에서 이질적인 만큼 주는 느낌도 이질적이다. 세부 배경보다는 주인공들에 더 집중되며, 생략된 배겨으로부터 부각된 주인공들은 자아를 강조하며 정신화디ᅟᅩᆫ다.
그리고 이 정신화는 더욱 비형상적인 명상적인 세 번째 작품으로 이어진다. 기억이나 추억에 관한 상징물들이 아름다운 시절의 황금빛 꿈을 지시하기라도 하는 듯한 금색 화면 위에서 부유하는 듯한 장면이다. 이 세 면의 작품은 점차로 빗물질화, 정신화하고 있다. 또 반대로 물감들의 물질이 강조되어 보이기도 하는 추상표현주의적 작푸믕로부터, 기억이 만든 구상화를 거쳐, 이제 화학물질들로만 정착되어 있는 허망한 추억으로 점차 가벼워지고 있기도 하다. 이 끊이지 않을 왕복행정에서 우리는 그이 탄생과 성장, 화가로의 입지를 다지는 과정을 읽어내며, 새삼 권여현의 이번 개인전이 자신을 반추해 보는 ‘아름다운 시절’이었음을 생각해낸다.(미술평론가.원광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