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에 대한 자기 고백

최태만

 

권여현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 자아와 사회, 신화와 현실, 가상과 실재, 상징과 기호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그 다원적인 내용의 비유기적 결합이 주는 소격 효과는 우리를 당황하게 하면서, 한편으로 의식의 분열과 파편화라는 후기산업사회의 문화적 징후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화면의 여백을 허락하지 않는 <깔대기><인체> 연작의 꽉 찬 화면을 대했을 때 나는 그의 의식을 지배하는 공간 공포(horror vacuum)가 자기 집착이라는 정신 상태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의 작업의 변모 과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보아온 나로서는, 이러한 주체 분열 현상이 자아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그의 내적 요청에 대응하여 스스로 해결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중간 단계라고 생각한다.

빈 공간에 대한 그의 위기 의식의 징후는, 과거의 폐쇄적인 공간이에 유폐된 인물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껏 그는 늘 닫힌 세계에서 자아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그의 작품들은, 이제 닫힌 공간의 빗장을 열고 막 세계를 향해 눈길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세계로 향한 출범이 그 자신으로부터 비롯한다는 사실에 대해 여전히 완강하다. 마치 광야를 떠도는 선지자처럼 분장(혹은 위장)하고, 신비한 분위기를 강화하기 위해 오른손을 가슴에 댄 그의 자화상(그의 마스크는 언제나 창백하고 중성적인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과, 도덕.종교 등 사회 상부 구조를 상징하는 성직자, 성의 정치를 보여주는 여성, 사회적 역할을 암시하는 소방수 등 그 자신에 의해 연출되 일련의 분장된 모습 앞에 놓여진 신체의 파편들은, 내가 세계 인식의 열쇠임을 암시하고 있다. 중심이 없고 독립된 화면이 서로 다른 서술 구조를 지닌 채 결합된 그의 그림들은, 그의 의식을 지배하는 역사.사회.성과 그것의 정치함, 욕망의 무의식에 대한 자기 고백적 양상을 드러낸다. 심리적 안정을 갈구할수록 화면 구성과 그 속에 담긴 의미와 내용이 더욱 동요되는 그의 작품은, 밖으로 첫발을 내디디려는 어려운 선택 앞에 고민하고 있는 자화상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