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속에 내재된 자아의 의미 

권여현의 작품세계

 윤진섭, 미술 평론가 (『공간』 1996, 9, pp. 112-19)

 


윤진섭 : 이번 대담은 권선생의 작품이 나오게된 계기와 작가의 개인적인 주변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근황부터 말씀해 주시죠.

 

권여현 : 개인전을 두 곳에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주제전이고, 또 평면작업으로 열가지 분장을 하고 분장을 하고 사진을 찍은 작품전입니다. 개념상으로는 설치에 가깝지요.

윤 : 지난해 예술의 전당에서 보여주었던 설치작업의 연장선상으로 해석할 수 있겠군요.

 

권선생이 미대에 들어간 때가 1981년입니다.

 

미대 학생으로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했다 할 수 있고 앞으로의 방향을 예견해 볼 수 있는 스타일이 대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4학년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당시의 작업 경향은 어떤 것이었고, 관심사는 무엇이었는지요. 또 하나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었습니까?

 

권 : 일단, 어떤 특정작가를 말한다면 4면이 막힌, 굳이 실내가 막힌 상태에서 인간은 소외될 수밖에 없고 그런 인간의 본질을 연구하는 프란시스 베이컨을 좋아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는 5공이 형성되는 시대였고, 모든 사회제도가 바뀐 혼란한 시대였지요. 그 때 저는 그러한 제도, 상황에 대해서 맞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윤: 1986년 무렵의 [형식과 내용]을 보면, 배경은 거의 추상이고 한쪽 부분에 형상성이 있습니다. 이 경우가 그 때의 의식이 나타나는 부분이 아닌가 짐작이 되는데요.

 

권 : 제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낸 작품들이었습니다. 당시의 우리 미술계는 모노크롬, 추상미술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또한 민중미술, 사회참여적인 미술이 힘을 얻고 있었어요. 그 둘 사이에서의 갈등이 잠재되어 있다가 나타난 그림이 바로 그런식이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윤 : 권선생은 대학시절에 실기실에 가만히 앉아 창작에만 몰두했던 모범생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사회보다는 밀폐된 공간에서 자의식의 심연의 이미지들을 끌어내는 작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개인적인 성격과도 연관시켜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러한 폐쇄지향성, 밀폐된 공간성이라고 하는 것이 초기의 내용, 형식과 [던져짐]을 통해서 실제로 구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근법적인 깊이감을 강하게 화면에 구사하고 거기에 무희를 비롯한 자신의 존재로부터 벗어나려는 동적인 움직임들이 회화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도와 동적인 자세에 시간성을 도입하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권 : 저는 상당히 소심한 편이어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서 책을 읽고, 특히 만화영화에서 배경과 공간이 있고 주인공들이 오버랩되는 기법이 많은 공간을 확보해나가는데 힌트를 얻어 그 이미지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윤 : [던져짐]이라는 용어는 실존주의적인 용어로 바꾸면 기투성이라고도 하는데, 낯선 세계로 뛰어든다는 의식이 강합니다. 이것이 [형식과 내용]의 작품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데, 저는 초기작품에서 [던져짐]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작품에 빈번히 등장하는 [당구]는 여럿이서 돌아가면서 하는 게임입니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그것을 혼자서 즐기고 있지요. 이것을 자살의 개념과 연관시키서 보면 신에 의해 던져졌지만 인간이 신에 대항하고, 독립된 개체로서 설 수 있는 방법은 자살이라는 논리, 즉 인간성의 회복을 자살이라는 것에 비춰 본 것입니다.

윤 :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남자, 여자가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중성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중성성]이라는 것이 권선생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권선생이 쓴 작업노트 속에도 나타나 있듯이, 시간을 X축으로 보고 공간을 Y축으로 봤을 때 시간의 축에서는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 일화들을 말하고 있고, 공간의 축은 어렸을 때의 놀이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X축으로 한다면 학교에서 일어나 짧은 순간들, 깡통차기, 어떤 여학생, 눈썰매, 강가의 송사리 잡기, 착한 어린이의 머리 쓰다듬기가 있고, 공간의 Y축에는 합천의 운동장, 누나의 문간방, 꽉짜인 프라이드 운전석, 서울대 운동장 등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축이 만나게 되면서 결국 작품을 형성하는데, 또 하나는 자아의 의미라는 자의식적인 작품으로 넘어가기 전, 88년도의 [던져짐]이라는 작품에서 보면 무희가 춤을 추는 뒷 배경의 액자 속에 한 남자의 웅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자아의 의미]라는 연작에서는 원근법에 의한 공간의 깊이감과 함께 구조가 해체되면서 마치 실험실 속에 있는 과학자의 모습을 닮은 인물과 함께 또는 선이라든지 여러 상징들, 부호, 실험가구와 같은 형체들이 등장합니다. 이런 인물들은 자신의 모습인지요.

 

권 : 저는 총체적인 그림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옛날 물건. 현대의 물건들을 같이 그려놓음으로써 시간도 같이 한 그림 속에 넣어 놓고 여러면의 인물들을 합성시켜서 다원적인 자아를 그려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윤 : 91년 초에는 조금전에 언급했던 [중성성]이 더 심화되면서 작품의 표면은 동양화의 파필과 같이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고전의 인용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물론 연장형태로 나아가고 있지만 그것이 마치 탐구가 덜 끝난 듯한 미진함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집요하게 주제에 천착해 나가는 근성이 약해지지 않았느냐라는 의문을 갖게되기도 하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권 :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제 작품이 완결되었거나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일기를 쓰듯이 작품을 하고, 경험에 대한 사실은 하나를 검증하지 않고 그린 그림들이기 때문에 한 작품을 보면 메시지가 강하지 않을 수도 잇지마나 전체적으로 보면 제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우선은 내 자신을 찾아나가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것을 남한테 알려주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윤 : 뭔가 아쉬움도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피카소도 청색시대, 장미시대를 거치면서 점진적으로 변화할 수 있었지만, 우리의 경우는 다소 성급한 경우도 있어서 흔히 얘기하는 작가들이 자기 세계를 견고히 하는데는 부족하지 않았나 지적하고 싶습니다. 차제에 그런 점이 아쉬움으로 남지 않나해서 이러한 질문을 드린 것입니다. 권선생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는 문제로부터 점차 확장되어 사회, 문화, 종교, 역사의 문제로까지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주제를 회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드러내려는 것인데, 이러한 면에서 상당히 폭이 넓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권선생은 1년간 미국에 체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물맷돌이라는 것이 소재로 등장하면서 자아로부터 탈피하고 범문명적으로 전환되었는데요, 그처럼 전환하게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요.

 

권 : 한국에서 작업을 할 때는 제 작업이 서양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미국에서는 오히려 동양적이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거기에 대해서 그림과 나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었는데, 그 때까지는 작은 테두리 안에서 나를 보았다면, 그 뒤로는 거울상에 맺혀졌을 때의 나, 커다란 세계에서 조그만 나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이후로 국가, 민족, 피, 혈통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좀더 소재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작품에서의 가장 큰 전환점은 소위 평면주의라는 고집에서 작가는 상당히 멀티펑션하다는 것을 가지게 되었는데, 자기 주제를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매체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것이기도 하죠. 1년 정도의 짧은 미국에서의 생활이었지만 제 세계관을 많이 바꿔놓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윤 : 금호미술관에서의 전시는 가족사적으로 중요한 발언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설치전에 나왔던 아버지와 아들을 다룬 작품은 매우 흥미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옛날 사진은 허리에 손을 얹고 옆에 꽃병이 있는 전형적인 포즈이고 권선생(아들)의 사진은 화병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이지 똑같이 혁대에 손을 얹고 있죠. 그 밑에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 옆에 아버지가 쓰던 군용 물품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습니다. 권선생의 다른 작품 속에서 어머니의 초상화가 화면에 등장했을 때는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대신 본인이 모자를 쓴 자화상이 등장한다든지, 고전의 이미지들이 등장하는데 그 것은 작가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여성성에 대한 불만과 또는 반대로 남성성에 대한 지향이 이처럼 부친성의 거세형식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권 : 상당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네요. 우리의 윤리관과 프로이드가 말하는 이론과는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질문에서는 얘기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지요. 프로이드는 성적인 문제로 말을 했지만 저는 심리적인 거세의 문제를 가지고 가능한 것 같기도 하지요, 또 하나 우리는 대가족이었기에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하여 성공을 해야하고 친구도 되야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제가 어머니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래서 감수성이라든지 생각하는 형태들이 여성적인 측면으로 많이 갔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존경심과 아울러 반감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남자다움에 대한 존경심도 있었지만 권위에 대한 저항감도 있었지요. 어렸을 때부터 항상 벽에 걸린 아버지의 모습을 본 후에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서 무의식적으로 유사한 포즈를 취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윤 : 그것이 결코 우연일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서 그런 질문을 던져 봤습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다른 설치작품의 경우 아버지의 군대 물품을 진열하고 또 하나는 화가가 쓰는 사물들을 같은 식으로 배열을 했는데 재미있는 발사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양분화시켜서 발상을 하는 것도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위트였는지요.

 

권 : 아버지가 생각하는 세계(용기있고 전투적이고 단호한 군인, 남자의 세계)가 그림에도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물감으로 만든 총탄이나 수류탄, 붓으로 만든 총알, 아버지는 사회와 싸우지만 나는 내 자신과 싸운다는 것을 말한 것이죠.

윤 : 권선생은 사물이나 사건을 이원론적으로 대비를 시키는 습성이 있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중성적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문화, 문명을 바라보는 관점 내지는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 : 제가 그렇게 보고 있는지는 잘 몰랐는데, 지금 그런 질문을 들으니 맞는 것 같기도 하군요. 저는 무의식적으로 극과 극의 간격을 많이 벌려 놓은 것 같습니다. 간격 중간에 상상력이라든지 창조적 요소를 많이 놓기 위하여 많이 벌려 놓고 모든 사물, 그림을 채워 그 사이를 메꾸어 나가는 형식을 취하지요.

윤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성적 이미지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 깔대기라든지 물맷돌의 형태, 삼각형이나 삼각뿔 형상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맞추어 자궁의 도식화가 나오기도 하는데요, 이를테면 화사한 꽃그림에서 처럼 노골적으로 성을 드러내는 것도 있습니다.

 

권 : 술, 담배를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 정신적으로 성적인 호기심이 발달되어 있다고 하지요. 인체는 조그만 우주의 축소판이라고 생각을 할 때, 빛도 결국은 모태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삼각형을 그리기 전에 자궁을 그렸을 때가 있었지요. 한 60여점 가량인데, 별로 발표는 안됐지만, 속에 인체가 들어가 있습니다.

윤 : [영원의 소리]에서는 영혼의 소리에서는 영혼의 소리의 이미지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있는 수도사와 같은 의상을 갖추고 있는 인체의 모습이지요.

 

권 : 지금은 사회의 현상에 대하여 많이 그리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 영의 세계와 연결 지점에 항상 저는 서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스스로 귀신을 찾는 놀이라고 할까요. 일부러 무서움에 접근해 보려고 애를 쓰는데, 그래야 신경이 예민해 진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신과 인간의 접근하는 가장 빠른 것은 시각적인 것보다는 청각적인 이미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나타난 것 같아요.

윤 : 인간에게 내재된 마니아라는 것을 예술쪽으로 풀면 예술가 되는 것이고, 주술적으로 풀면 무당이 되는 것이지만 [광기]라는 측면에서는 같지요. 그래서 권선생이 퍼포먼스성 짙은 지금의 사회적인 것은 많은 용기가 뒷받침되었다고 봅니다. 특히 예술의 전당에서의 여성으로 분장한 사진 같은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한 행위였습니다. 광기의 뒷받침이 없었다면 힘들었겠지요. 성직자, 여자, 소방수 등으로 분장을 했는데, 실제로 어떤 작가의 영향을 받았는지요.

 

권 : 모든 것에 영향을 받았지만 나 자신의 작품을 위하여 10%이상의 영향을 받은 작가는 없습니다.

윤 : 다른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민감하게 반응할 하 등의 이유가 없지요. 예를 들면 [던져짐]이란 작품에서는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에서 나타나는 시간성의 문제, 데이비드 샬르의 2중 구조적인 일련의 화면구조와 함께 간략하게 스케치하는 스타일이나, 원들의 등장 또 내용적으로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요소들도 보이고.. 저는 그것이 부정적인 요소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94년도 [관계 시리즈]에서 는 사회, 문화, 역사, 보편적인 가치나 범주가 작품이 심화되면서 하나의 주제로 등장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예술의 전당에서 사진을 통한 퍼포먼스가 있었는데 성직자, 여인, 소방수의 모습과 신체의 부분들을 폴리코트로 떠서 의상과 함께 제시하는 방법을 썼는데, 그 때 작업을 전화하게된 배경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사진을 이용해서 전달할 때는 회화로 전달할 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권 : 사진으로 나타날 때는 즉각성이 있습니다. 그림으로 그릴 때는 제작중에 시간이 경과되기 때문에 전달되는 힘이 사진에 비해 약해지고 은유적이 됩니다.

윤 : 분장할 때의 야릇한 묘미, 재미, 흥분따위는 퍼포먼스만이 가질 수 있는 재미일겁니다. 화제를 바꾸면, 이번 개인전은 보다 다양하고 재미있는 전시인 것 같습니다.

 

권 : 윤선생님께서 지적했듯이 이것도 발상은 이원론적 대비였습니다. 양쪽을 지정해 놓고 여러 가지가 파생되게끔 했는데 긴 준비 과정을 거쳐 한 순간에 사진을 찍지요. 그렇지만 그 긴 기간이 짧은 한 순간에 농축되어서 나타나는, 즉 6개월간 맛봐야 하는 기쁨이 농축되어서 나타나는 기쁨이어서 그 기분은 더 큰 것 같습니다. 이것을 찍으면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겠다는 식으로 앞의 작품이 다음 작품을 가르쳐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작업을 계속해 나가고 싶습니다. 평면작업은 시를 읽을 때처럼 난해해서 해독해야 하는 반면에 사진작업은 이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지요.

윤 : 앞에서 언급했듯이 작가가 누구든 사람에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데 10%이상의 범주는 넘지 않았다는 것은 솔직하고 긍정적인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그 영향을 부인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데. 신디 셔먼의 경우도 그렇게 일본의 모리무라 마사요시 같은 경우는 보다 더 정교하고, 극히 서양적이지만 바탕에는 일본적인 감수성과 정서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그런 작가를 보면서 권여현이라는 작가가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오히려 우리의 냄새가 더 나는, 우리의 고민을 토론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한편에서는 국지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보편적 가치를 향해 승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하겠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동안 작업을 하면서 나름대로 문화, 문명을 보는 관점이 있다고 보는데 그 부분에 대한 작가의 입장은 어떤 것입니까? 미술이라는 매체의 사회에 대한 효능, 기능, 역할 같은 것을 말씀해 주시지요.

 

권 : 전에는 예술가가 사회를 위해 투사가 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미술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매체는 많이 바뀌겠지만 미술이라는 제도는 존재할 것이고, 그 미술이라는 제도 안에서 날카로운 시각을 가지고 보고 싶습니다.

 

나 개인의 생각은 상당히 보수적이지만, 나타나는 작품이나 행동양식은 전위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문명이라는 것과 함께 살아가지만, 보수적인 근본을 가지고 비판적인 작품을 계속 할 것 같습니다.

윤 :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만의 분위기를 가지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별성은 분명히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짧게나마 이렇게 해서 80년대부터 90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화단에서 독특한 자기발언을 하고 있는 권여현씨의 세계를 살펴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