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권여현은 1984년 대학교 4학년 재학중 창작미협 공모전 대상, 86년과 90년 동아미술상과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91년 평론가들에 의해 주어지는 석남미술상을 수상함으로써 혜성처럼 화단에 두각을 나타낸 젊은 화가이다. 그는 88년 제 1회 개인전 이후 매년 한두번의 개인전과 100여회의 그룹전에 참가했으며, 초인적인 열정으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개인전들과 그가 참가한 모든 그룹전들보다 의미가 있었던 것은 94년 10월 5일부터 10일동안 예술의 전당 1,2실에서 열렸던 10회 개인전일 것이다. 그 방대한 공간에 그는 2.5m X 3.3m 크기의 유화 작품들로 가득 메웠고, 그가 직접 제작한 대규모 미이라나 물맷돌의 깔때기, 인체의 부분들을 직접 떠낸 폴리코트 모형들을 40m의 길이에 설치했다. 이 전시회는 그동안 그의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 그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 주었다.
오래전부터 권여현의 주된 주제는 인간이었다. 우선 자기 자신의 성찰이 그의 주제가 되었다. 그는 매우 실존적인 태도로 접근했다. 즉 그리는 개체가 세상에 내던져졌다는 기본적인 입장에서 그림을 제작해 나갔고, 자신을 주인공 삼아 나르시스가 자신을 보듯이 그의 주변의 삶의 배경속에 여러 모습의 그의 심리적 초상을 그려 내었다. 그는 자아를 성찰함에 있어 그 자신의 내면 세계로 파고드는 대신에, 외부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취한다. 그를 형성하는 데에는 외부 세계의 영향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아를 크게 보아 사회와 개인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파악한다.
인상적이었던 그의 과거 작품중의 하나는 아버지의 아들-2 이다. 완전무장한 군인의 사진과 그 옆에 설치된 군장비 옆에 물감과 붓등 그림도구로 완전 무장한 사진 그리고 그 옆에 실제도구들을 설치한 작품이었다. 군인이 자위를 위한 중책을 수행하고 있다면, 화가 역시 그에 뒤지지 않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일 것이며, 이는 결국 개인과 사회의 관계속에서 주변인으로서의 화가가 아니라, 적극적 참여자로서의 화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93년경부터 그의 작업은 개인적인 성찰보다 일반적인 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어감을 볼수 있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연관된 모든 정보를 그림으로 만든다. 그는 개인의 존재가 하나의 구체안에 통신망처럼 복잡하고 수많은 선들과 나선형 거미줄에서 볼 수 있는 교차연결부들의 중심에 위치하는 구심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구심점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초월하기 때문에 잘 파악할 수 없는 존재하고 생각한다. 그는 작품속에 정치적 폭력, 고문, 문화, 고대유적, 성, 사랑, 동성애, 종교, 역사, 신비 , 과학등 많은 정보들을 집어 넣는다. 이 수많은 정보들은 통신망을 타고 중심으로 흡수된다. 권여현은 그 중심에 전달되는 정보들을 6가지로 분류하여, 사회, 종교, 역사, 과학, 욕망, 사랑의 범주로 묶었다. 우리는 94년 그의 전람회에서 이 범주를 따라 6장의 각기 다른 정보를 담고 있는 화면들을 하나로 모은 <관계>라는 제목의 연작을 볼 수 있었다. 상호 무관한 듯한 단편들은 현실문제에 아무런 해답도 제시 하지 못하는 듯 하기도 하지만, 이 무관한 현상들이 결국 그의 사고를 지배하고, 그의 삶에 꾸준히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이 연작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다 깔대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 그는 이것을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연관성이 없는 사건들이 산재하는 혼돈의 세계와 논리적으로 정돈된 세계를 연결시켜 주는 상징적인 매개체로써 사용한다.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조금씩 내보내는 구조로서의 깔대기의 모습이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번 전시작품들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형상은 머리-얼굴이다. 때로는 4개의 큰화면이 한 조를 이룬 대형화면들에 옆얼굴의 윤곽을 그려 놓았다. 이 머리-얼굴 역시 깔대기와 동일한 상징으로 선택되었다. 윤곽선 안에 사진꼴라쥬되거나 혹은 그려진 수많은 사건들을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해 내는 두뇌와 외계를 포착하는 다섯가지의 감각을 모두 가지고 있는 민감한 얼굴이 상징적 표현으로서의 머리-얼굴인 것이다.
그의 작품속에 혼재하는 6개 범주의 사건, 상황들과 깔대기와 얼굴은 즉자인 그 자신과 대자연 그가 보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이 그리는 작업을 통해서 사건들을 정리하고, 자신의 혼돈을 정리하면서 자아의 의미를 성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를 구성하는 것들”이라는 주제 혹은 작품 제목이 그의 관심사를 웅변하고 있는데, <관계>연작과 <얼굴>연작은 구 주제의 발전된 변조에 다름하지 않는다.
2.
작품에서 주제보다 중요한 것은 그 조형적 실현이다. 조형은 주제를 잘 담아낼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혹은 그 주제보다 더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다. 조형언어는 언어의 바깥에 있는 의미도 포착해 낼 수 있기 때문인데, 권여현의 경우 조형은 그의 주제를 압도하고 있다. 조형적인 면에서 보이는 그의 화면의 풍부함은 그의 개인적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깔끔하게 하나의 기법으로 그려진 작품에서 빈곤함을 본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알고 있고, 습득한 모든 기법들을 한 화면에 포착하고자 한다. 재료학의 실험장처럼 보이기도 해서, 혼란스러움을 예상하게 하지만, 그는 하나의 색면으로 조성하는 방법, 시선을 가장 많이 끄는 색인 빨강을 화면에 넓게 포진 시키는 방법, 소소한 대상들을 묶어 버리는 커다란 대상의 화폭 지배의 방법, 단색조의 거친 화면질감으로 전체적인 인상을 유도하는 방법등이 그가 다양함을 통일시키는 방법이며, 우리는 그의 커다란 작품들에서 혼란스러움보다는 시선을 빼앗는 흡인력을 느끼게 된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물질적으로 우세한 화면을 보여준다. 그는 노끈, 띠모양의 마대포, 이것들을 부착시키고 또 스스로 질감형성에 참여하는 석고 등으로 준비작업을 한 후, 여러 사건들을 묘사해 넣거나, 수많은 사진들을 부착하고, 그 전체를 머리-얼굴의 윤곽선으로 들러 치고 있다. 석고에 배어나온 섬유소들의 염은 황색들과 우연성을 최대한 이용한 부착물들과 넓게 뿌려진 물감의 계획적인 배치등이 우리의 시선을 우선적으로 끄는 매력적인 요소이다.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오게 되는 뫼비우스 띠 같은 상징들이 분리된 정보를 연결시키고 있다.
그는 그의 감각기관에 걸리는 모든 현상을 미술화 시키고자 하며, 그 체험들의 영역을 확장시키면서, 상상력의 영역을 확장시키고자 한다. 그림으로써 그의 의식은 더욱 자유로울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자아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한다. 현대미술의 하나의 큰 특징이 자신으로의 집중이며, 이는 많은 경우 무의식의 발산을 유도하는 추상적 기법으로 분출되지만, 권여현은 구체적 사실들을 구체적인 방법으로 묘사하고 종합해 나가는 방법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러한 권여현의 작업은 포스트모더니즘적이라는 평가를 자주 받는다. 그 작품들의 모습, 이것 저것 여러 가지 이야기들과 대상들이 혼재하고 있는 모습이 그러한 인상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필자는 그를 논란의 여지가 많은 단어속에 가두느니 보다는 우리의 현실로 끌어내고 싶다. 누가 무어라해도 그는 우리 시대의 삶을 살면서, 자신으로부터 혹은 사회로부터 탐색 추구된 것들을 작품화해왔고, 앞으로도 이를 더 발전시킬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