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의 숲에서 메두사를 보라
2018
메두사에게는 눈이 마주친 생명체를 석화시켜버리는 능력이 있다. 메두사는 수많은 뱀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 메두사의 흉측한 외모에 사람들은 얼어붙는 듯 공포에 질려 순간적으로 돌로 변해버린다. 메두사의 눈을 본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신화에서 메두사의 무섭고 흉측한 모습과 돌로 만드는 능력이라는 설정은 아마도 사회라는 대타자가 주는 경고의 알레고리일 것이다. 그 경고는 움직임이 없는 고정된 즉자적 존재로서의 석화된 타자를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기표 화된다는 것과 같다. 개인의 의지와 생명, 감각의 가능성은 석화되면 안 된다는 것을 메두사를 통해서 경고하고 있다. 석화라는 자연의 극단적 선택은 뱀이라는 위기에서 자기를 소멸시킴으로써 피해 갈 순 있지만 생명의 상실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눈먼 자(blind)의 숲은 눈을 가림(vailed)으로서 감각의 예민함을 회복하고, 공정성을 담보하는 재판에 여신 페미다가 인종, 계급, 남녀구분을 하지 않고 평등한 판결을 위해 눈을 가림을 의미하기도 한다. 시각을 배제하고 예민해진 감각과 어둠의 사유를 통하여 만나는 새로운 세상을 말한다. 아스클레피오스, 오이디푸스, 자토이치는 바람의 모습을 틀림없이 보았을 것이다.
시각중심주의에 대한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엘렌 식수(Heéleène Cixous)의 경고도 같은 맥락이다.
기표화되고 남성권력화에 대한. 남성적 상징계로 진입하는 거울상 체계에 대한 경고는 상상계로 회귀하고. 코라 상태로 소환함으로서 시적언어나 발화이전의 미분화 감각 숲으로 인도함이다.
베일로 가림을 넘어 스스로 눈을 찌르는 오이디푸스의 결단은 눈먼 자의 숲에 장소 잡는 것과 같은 것이다. 눈을 뜨고도 자기 어머니 지 모르고 결혼하게 되며, 늘 경계하지만, 자신의 출생이나 자신의 행동의 악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당성을 부여 받지 못하는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를 벌하고 눈뜨기 이전상태로 자신을 돌려버리는 오이디푸스의 결단은 소멸을 통한 재탄생이다.
그 숲은 그런 곳이다
Kwonyeohyun↗
www.instagram.com/kwonyeo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