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거핀 드로잉 구조

2012 



1.
같은 공간에 다른 시간이 구현된 텍스트는 그래피티, 무조음계, 더미들에서 잘 드러나 보인다.

일견 각 텍스트들은 혼돈, 혼성, 무질서, 처럼 보인다.

계층의 논리에서 보면 무질서는 exotic하고 다소 b급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간의 사이를 잘 관찰해 보면 레이어의 절단면이 보인다.  그 더미들의 관계 속에는 상황과 중력의 역학 함수에 의한 미묘한 장르공존의 근거가 존재하고 있다.

역전의 순간은 항상 스스로를 드러낼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그의 잠재태가 분유되기에 충만할 때가 되면 어던 식으로든 모습을 보인다.

루소의 숲, 하이브리드의 숲, 서발턴 Subaltern에 근거한 노예변증법은 이미 무르익은 잠재태이고 개화의 아참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2.

나의 작업구조는 스스로 창안한 몇 가지의 그물망에 의존한다. 나는 그것이 인타라망 이기를 원하지만, 일견 미술언어구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석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구조도 헤겔의 자기부정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니 또한 나쁠 것도 없다.

미술언어로 표현된 작업의 매커니즘의 출발점은 나무의 표현에서 찾을 수 있다.

화면 전체를 주도하고 관자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장치는 나무의 표현이다.

질서(구조적 기법)가 조성된 후 전면에 걸쳐 배치된 나무의 연장 속에 구현되는 주요한 미술언어는 물질성의 표출이다. 커다란 붓질에 의한 나무의 형태 묘사는 의식의 뒷면으로 사라지고, 행위로 드러난 속도와 기운생동, 물감의 자율적 운용, 두터운 질료감에 결부된 색채감으로 충만한 표면이 전면에서 응시자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질료와 결부된 색채 레드, 블랙은 배면에 배치된 엷은 막의 앵프라맹스로 표현된 다른 양식들과 의 차이에 의해 자연스레 내러티브와 관련 없이 감각적 요소로서 시선을 충분히 집중시킨다, 이제 작업의 주제는 내러티브가 아니라 질료운용구조 자체이다.

내러티브로서의 디오니소스축제나 카니발의 속성과 명화의 패러디는 구조속의 소 구조인 미장아빔의 연속성속에서 그저 도구일 뿐이다, 여러 명화 속 인물이 층위적으로 화면의 뒷부분에 배치되고 인물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들의 조성은 우첼로식의 원근법이 적용되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교란시키기에는 오히려 뉴-라이프치히학파가 즐겨 사용한 3점 소실점방법이 유효하다.

 

3.

작업의 실행적 시작은 전체화면, 전체설치, 전체영상콘티의 구성과 배치에서 부터인데 이성적 공간 구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커다란 배치에서 결핍된 요소들과 요소들 간의 유격에서 생긴 공간은 감각으로 가득 찬 자율성의 공간이 된다. 설계가 이성의 조절에 따라 조성된다면 제작은 철저히 감성의 지배를 받는다, 간극은 고착되기 전에 드로잉으로 가득 차게 된다. 이미지의 간극이 서로 넓어지면 사이 사이 를 그저 조형요소로 매우고 그들이 자율적으로 의미를 생성하게 내버려둔다. 내파공간의 표현은 앵프라맹스적 층위 쌓기의 좋은 도전 과제다. (원형과 육각형의 모나드 증식차이는 중요한 비교 가능한 예시가 된다.) 모나드들의 접합면이 너무 조밀하면 크게 지우기를 해서 공기의 유동공간을 조성해야한다. 역설적이고 파괴적인 생각이지만, 지진, 해일, 기상변동은 자기유지를 위한 코나투스의 자기부정이고 양가성의 필연적 순환이다. 우리는 다다의 당위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라블레나 바흐친의 양가성에 관한 생각은 그들의 이론을 접하기 전에 이미 내 작업을 통해 무수히 많은 사례를 통해 표현되어 왔다. 작업 곳곳에서 발견되는 사회상이나 이미지의 전복의 흔적이 그 증거다. 젠드의 전환, 사회적 역할의 전환, 동물, 식물의 하이브리드같은 표현은 간혹 신화적 내러티브로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양가성의 표현이다.

미술에서 억압이라는 악역을 담당해온 기표가 있어야만, 우리가 꼭 쥐고 아끼는 동아줄인 기의의 표출이 가능하다. 구속, 제약 ,억압이 강할수록 창조력이 극대화된다는 클리매스터에 적극 동조하면서도 그 개념 역시 저자의 죽음이라는 개념을 피할수 없다는 위안 아래 나는 장소특정성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  내 고향 합천은 오필리아의 죽음으로 거세된 팔루스적 상실의 고향이다. 지금쯤 댐의 물속에서 부식되고 해체될 나의 유년은 마들렌의 상기를 통하지 않으면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다. 결핍과 구속은 근원적 불안을 야기하는데 나는 고향의 상실을 고마워 한다. 품크툰을위해 상실한 고향의 존재가 더없이 기특하다. 기억의 상기물인 푼크툼의 표현방식은 에로와 포르노의 경계에서 포르노에 가까운 쪽을 택하고 싶다. 절제된 표현보다는 직설적이고 독설적인 표현이 더 나답다는 얘기고 동물적이라고 말할 수있다,  

 

5.

순환되는 양태들을 접속하는 그물망의 매듭은 줄기 Rhizome 의 생성과 성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같은 속성의 다른 몸(체)의 접속이 쉴 틈 없이 일어나고 다시 구조화된다. 구조는 줄기들로 접속되고 행간이 넓어진다. 그 줄기마저 고착된다. -탈  줄기化- 재 줄기化-구조망이 내파될수록 (줄기로 반복 겹침, 혹은 촘촘해 짐) 비 구조망 공간(망간 공간) 은 풍부해 진다. 압축공기의 저장방법과 같다.(예, 겨울에 여러 벌 껴입은 옷 같음)옷들의 얇은 막의 층위가 풍부할수록 공기는 머무를 공간이 풍부해진다.

공기가 압축되면 그 운동성은 활성화된다-활성화된 공기는 분출과 욕동의 출구를 모색한다. 내적 폭발은 쥬이상스(jouissance)를 동반한다. -내파의 선행 조건은 횡적, 종적으로 충만한 억압의 깊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6.

속도는 물질의 윤활작용에 의해 배가된다.

속도를 최대화하기위해서 마찰계수를 0지점에 근접시켜야한다.

붓질의 가능최대속도를 위해서 surface 위에 매질이 필요하다. (테레핀 오일이나 린시드 오일의 매질되기).

물질에 수반된 속도는 매질의 양호한 표면처리에 의해 예측 불가능한 효과를 창출한다. 물리적인 힘이 불가능한 효과를 창출할 가능성을 배가한다.

 

마찰계수0의 촉구는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글쓰기의 영도, S/Z의 접점. 발생텍스트의 생성, 아브젝션의 경계등이다. 접점에서의 미끄러짐은 불일치의 유격을 낳고 그간극의 시뮬라시옹적 봉합은 예술가의 특권적 전매상품이 되었다.

물리적 힘을 실은 붓질하기는 붓끝과 캔버스 표면의 접점에서 물질이 발려지는 예상된 길이, 넓이, 캔버스 강도 등의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작가의 숙련도에 의해 붓질속도가 배가되고 색채나 화면효과가 예측 불능의 상태가 된다.

 

작업의 강밀도를 높이기 위하여 아웃라인의 구성은 계획적으로 하고 구간 실행에 의한 면간, 선간, 붓질간의 변용을 기대하는 조형언어를 사용한다.

이는 dramatic (극본, 계획, 동일 반복공연가능)이라는 언어와  perfomance (즉흥성, 변용, 창의성, 일회성)라는 언어의 결합을 통한 구조망(net)과 망간(space in the net)의 마찰계수를 최소화 하려는 전략이다.

 

망간 공간의 표현을 위한 연장은 묘사, 상황설정, 각종 패러디로 채워진다. 이는 세계내 존재에서 세계의 구성요소를 의미한다.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이미지는 망간구조의 변용가능성을 위한 필수요소다. 잠재성이 표출되기 위해서는 그 저장소를 구속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된다. 내가 보여주기 원하는 것은 물질에 실린 강한 붓질의 스트로크 다.-그것은 디오니소 긴 동물적 살의 의 발현과 관계있다.

 

7.

나의 키워드는 코나투스 conatus, 영원회귀 永遠回歸, 모나드monad, 나선형 순환구조 Spiral Circulation Structure, 양가성 ambivalence, 거울상 단계 mirror stage, 응시 gaze, 실재계의 찡그림,-맥거핀 macguffin, 욕망 desire, 이데올로기 ideology 가아닌 헤게모니 Hegemony ,  비숍의 관계미술 비판 등이다

 

8.

나의 지성이 감성을 더욱 활성화 한다.

용기속에 담긴 감성의 물은 이성의 강한 화력을 통해 기화되어 비로소 외부로 분출된다.  유출가능성은 조건이 예정조화 되어야 한다.

망간공간을 표현하는 육필은 혀드로잉, 오토마티즘에 의거한 감각드로잉, 메를로 퐁티의 살 드로잉등으로 구현된다.




Kwonyeo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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