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때기는 누구에게나 푼크툼이다
2019 - 2012
개인의 기억을 찌르는 상기물이 다들 다르겠지만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들은 기름가게에 등유를 사러 다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드럼통에 담긴 기름은 깔때기를 통과해서 작은 유리병에 옮겨져서 각 가정에서 호롱불을 밝혀주곤 했다.
나의 유년은 기름사기 심부름의 시간이었다. 지금은 수몰된 잃어버린 고향을 니의 기억은 깔때기의 구멍을 통하여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년에서 30년이 지난 나의 장년기에 애들 둘을 데리고 프랑스에서 안식년으로 한 학기를 보냈다. 방브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커다란 깔때기는 아버지와 나와 나의 아이 3대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될 것 같다. 아들은 내가 깔때기를 사고, 지금은 깔때기를 그리는 장면을 본다. 나의 기름심부름과 아들의 프랑스 생활은 교환 가능 한 가치일까? 선조적 계승이라면 결코 연관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미술평론가의 글을 언급해야한다.
“물맷돌 Water Millstone]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거친 삼베로 된 이 생활도구는 문자 그대로 맷돌에 물을 공급하는 용도로 고안된 것인데, 깔때기 모양의 그것은 독특한 방식으로 매듭지워진 끈에 의해 천장에 매달려 사용된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권여현은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지역에서 사용되는 이 도구를 자기작업의 주요 모티브로 삼게 된다. 캔버스에 부착된 오브제 형태나 아니면 직접 설치 형식으로 제시되는 이[물맷돌]작업에서 역시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는 것은 선적인 요소이다.”ㅡ미술평론가 윤진섭
물맷돌기구는 우랄 알타이어족의 이동 경로에서 발견되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삶의 장치이다. 물맷돌기구는 나에게는 동양과 서양을 연결해주는 조형장치다. 이 장치를 통해 우리 민족은 민족의 정체성이 유목과 이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순혈은 이동경로에서 흡수한 다양한 형태의 삶의 방식의 집적일 수도있다는 해석을 어떻게 해명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에게는 선조적이든, 오리엔탈리즘의 흔적이든, 그 까다로운 무형의 덩어리는 시간과 공간, 보여짐과 감춰진 것들을 연결하는 물질로서의 상징이 물맷돌 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구체화되고 이것은 다시 깔때기의 형태로 진화하였다.
(2007.4 프랑스 파리, 방브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깔때기)
권여현 2012.6.에 초안하고 2019년에 다시 씀
Kwonyeo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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