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그림
1997
현대사회는 거의 모든 정보가 공유되고,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서 신성함과 신비의 영역은 점점 축소되어가고 있다. 절대가치, 도덕의 이름, 윤리, 금기, 국가관, 종교의 위력, 민족의 동질성등은 대중매체나 인터넷을 통하여 그 힘을 잃어 가고 있다.
예술이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나 정신의 부유함은 말초적이고 직감적인, 혹은 재미있고 감각적인 대중매체의 상업적이고 무차별적인 공세에 여지없이 그 자리를 물려주어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대중매체에 길들여진 우리의 정신은 거의 모든 절대적인 보루들을 허물고 공허함으로 대체해 간다. 적어도, 'Why?' 라는 탐구심보다는 'Why Not?' 이라는 표현이 훨씬 편리해 졌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의 철학이 절대 진리를 해체하고, 현대종교는 절대 선에 대하여 회의를 하기에 이르렀고, 현대 미술은 거의 모든 방면에서 미술이 가졌던 매직을 포기하고 그 보상으로 자유로움을 선택했다. 우리의 동생들은 남성과 여성을 UNI 하게 인식하기에 스스럼이 없어 졌고, 우리의 형과 아버지는 힘 없이 그런 사실들을 인정해 버렸다. 이제는 우리가 알고있던 너무도 많은 사실의 진실성이 겨우 몇가지에 국한되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인간이므로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사실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는다는 것 뿐이다.
이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절대 진리이다.
그러나 이 절대 진리 하나만 가지고 살아 가기에는 우리 인간의 의미가 너무도 초라하고 슬픈 일이다. ‘나는 무엇이고, 어디로 가고, 왜 사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어 버린 현실은 허무함, 그 자체이다.
지난날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부조리와 불합리로 이루어진 모순의 덩어리였고 나에게는 뚜렷한 타도의 대상이었다. 나는 그 무언가를 타도하고, 개선하고, 교도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대의명분이 분명하다고 굳게 믿고 열심히 세상을타도하고, 파괴하고, 비난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비난하고 깨부순 것은 세상이 아니고 내 안에 자리잡고 있던 인간성의 숭고함이었다. 내가 나를 부수는 동안 세상은 세상을 역시 부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파괴되고, 남루해 지고, 먼지뿐인 곳에서 나는 그 무엇인가를 찾기위해, 만들기 위해, 세우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만 한다. 내가 부수고 비난했던 많은 그 무엇들을 붕대로 감싸고 나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덮히고, 나의 손으로 지난날을 돌아보며 쓰다듬고 싶다.
시작의 출발점, 그것은 최소 단위이기도 하고 가장 복잡한 단위이기도 한, 가족이라는 것이어야 할 것같다. 부(FATHER) 와 모(MOTHER) 가 만나서 가족의 단위를 형성하는 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나 우주의 생성원리와 그 모양이 매우 닮아 있다.
가족간의 정, 갈등, 화해, 생장의 과정은 마치 나의 내부에 숨어있는 알 수 없는 자아의 모습이 움직이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가족의 움직임은 나와 너무도 가까이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미쳐 인식하지 못했던 살아있는 자아의 외화된 실체인 것 같다.
나와 가족은 별개의 개체이면서 역으로 소급하면 하나의 합체일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찾는일, 가치관을 세우는 일, 윤리관, 우주관을 세우는 일은 가족의 형태에서 찾아야 될 것 같다.
가족이 만들어진 길, 가족이 걸어온 길, 가족이 분화된 길을 거슬러 가는 일은 내 속에 존재하는 “나”를 찾아가는 길과 겹쳐져 있다.
자 - 기둥의 의미와 비슷.척도의 필요성
원 - 시간,공간.자아
8자 - 뫼비우스의 띠
씨 - 생명의 근원.가족의 근본성과 기본단위
벼 - 가족의 구성원에 대한 농경적 해석-농경문화
기둥 - 새로운 진리,가치관을 정립
이빨 - 자기 정체성
다섯손가락 - 가족구성원의 역할과 가치의 균등성. 모성을 상징
영문family,seed - 의미와 글자의 조형성을 동시에 수용
Kwonyeo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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