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colage  in Magic Forest


 

과거와 현재, 신화와 대중문화, 고귀한 것과 일상적인 것들의 혼용은 내 작업의 주요한 브리콜라쥬다.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여인의 모습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비너스를 연상시키지만 그녀의 얼굴은 분명히 동양인이다. 그녀의 머리카락도 메두사를 연상시키지만 분위기는 현대적이다. 배경을 구성하는 빠르게 묘사된 건물의 실내에 장식물인 연꽃과 알로에는 조각된 사자의 모습과 서로 맞아 떨어지는 것이 없다. “숲은 규정하기 힘든 여러 상황들이 쉽게 상호 교환되는 장소기 때문에 내 작업의 모호성과 이미지의 혼성에 적합한 uncanny 한 소재다.” (권여현 작업노트, 2008년 2월,)


나에게  숲은 억제된 현실 너머의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형상화고 이미지들 간의 혼용성을 강조하는데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동물이나 사물의 이미지들을 숲속에 배치하면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것 같은 초현실적인 세계를 쉽게 조성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상태나 사회를 상징하는 여성의 이미지 뒤편에 배치된 나의 얼굴을 지닌 뱀이나 다른 종류의 맹수들은 은밀한 세계의 창조자인 동시에 하이브리드 세계의 목격자가 되고 있다. 소위 관음증적인 나의 모습은 저자가 아닌 대상으로 태어나 기이한 숲에 긴장감을 더 높인다. 루소의 작업에 등장하는 숲들은 정확히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공간들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만큼이나 어디에 무엇이 숨겨 있는지도 예측할 수 없다. 또한 눈에 보인 이미지들도 금새 무성한 나뭇잎 뒤로 사라져버리고 없던 이미지도 불쑥 튀어나올 듯한 공간들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러한 공간을 ‘신비롭다’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공간은 두려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신비와 기이함과 혼돈의 공간인 마법의 숲은 수염뿌리처럼 예측불가능의 자율성을 지닌다.

그동안 오필리아의 연못에 등장하는 오필리아는, 프로이트의 제자격인 라크 라캉은 자신의 이론을 설파하려고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신화 대신 햄릿과 오필리아의 에피소드를 인용한다.

이것이 내 작업의 첫 번째 장치인 ‘신화적인 요소’다. 오필리아, 스핑크스, 오이디푸스, 디오니소스 등의 이미지를 자주 사용한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조형장치를  통해 들뢰즈, 데리다, 바흐친, 자크 라캉 등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의 주장을 담는다.  내 그림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오필리아의 죽음이라는 이야기 전개를 중심으로 작품을 보지만 곧 라크 라캉의 이론을 연결하기도 하고, 오필리아의 죽음을 ‘팔루스’와 쉽게 관계 맺는다. 그래도 여전히 종착점은 화면의 구성이나, 질료를 다루는 기술, 색감의 순도등이다.

다시 돌아와서 ‘리좀’의 개념이 내 작업의 중심관심사이다. 들뢰즈는 ‘수목’과 ‘리좀’을 구분합니다. 그러나 내 작업에서는 이들 마저 뒤엉켜 있다.

이 숲에서 나는 디오니소스의 포도주의 마법에서 더 이상 헤어날 수 없다.




Kwonyeo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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