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한국일보 --------권여현 1996.7.14

[장희빈과 현대미술]

드라마에서 장희빈은 인현왕후(민비)의 화상에 활을 쏘거나, 민비를 상징하는 지푸라기 인형에 바늘을 찔러서 민비의 신변에 해가 미치도록 기원한다. 이와 유사하게 고대 알타미라 동굴벽화에는 창에 급소를 찔린 동물들이 그려져 있다. 원시인들은 사냥해야할 동물들을 그려놓고 창 같은 무기로 그 동물들의 급소를 공격하는 행위를 한 후에 사냥에 나섰다. 이미 원시인들은 동물의 영혼을 빼앗았기 때문에 사냥은 식은 죽 먹기였다.

우리 집에 배달되는 우편물의 대부분은 각종 전시회의 팜플릿과 미술 정보지 등이다. 그 배달물들에 실린 작가들의 작품세계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기발하고 특이한 작품들과 아주 훌륭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스캔들을 바라는 애교있는 작품들도 상당수 있다. 나도 작품을 대하는 취향의 잣대를 가지고는 있으나 그들의 기발하고, 자유롭고, 다양한 작품세계 앞에는 몹시 당혹스럽다. 나는 반사적으로 내 자신과 내 작품들을 돌아보면서 고민에 빠진다. 이 많은 경향을 전부 수용하는 넓은 바다로 나가느냐, 아니면 더욱 더 좁고 깊은 우물을 파느냐의 갈등이 현대적, 전문적, 예술성, 편협, 시대착오적, 경직 등의 단어들과 버물려서 나를 누른다. 매일 한 두번씩 나는 "내가 지금 무었을 하고있나? 지금 나는 똑같은 작품을 복제하고 있는걸까?" 또는, 첨단과학과 다양한 정보체계가 판치는 영상시대에 대답없는 캔버스를 붙들고 "내가 지금 의미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나?" 하는 고민으로 조바심을 내고는 한다.

현대미술은 왕성한 소화력을 앞세워 미술의 제도하에서 작가들에게 많은 자유를 주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나처럼 소질없는 화가가 계속 그림을 그릴수가 있으니 김홍도나 렘브란트가 살아있다면 개탄하며 웃을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팝아트, 포스터 모더니즘, 설치미술, 개념미술, 컴퓨터아트, 영상매체, 행위미술 등 어느 하나라도 취향에 맞으면 검증없이도 미술의 제도하에서 마음대로 토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매직을 주고서 자유를 얻었다. 미술에는 매직이 있었다. 고대 미술이나 인디언 미술 등에는 신성한 그 무엇이 있었다. 작가는 경건한 태도로 작품을 구상하고 경외심을 가지고 작품을 제작하였고 금기와 절제를 통하여 작품을 완성하였다. 작가의 혼이 스며든 그런 숭고한 작품들은 시간의 시련을 견디어 냈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우리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하며, 어디로 가야하는가를 가르쳐 준다.

현대미술이 자유로움을 얻은 대신 매직을 잃었다는 것이 나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