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1996.9.26 한국일보

좋은 작가 좋은 감상자

사람들은 전시장에서 흔히 이런 말들을 한다. "나는 전혀 모르겠어!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아주 어려워",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어 있는 미술은 고호나 세잔류의 인상파미술, 혹은 고전주의 미술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가와 애호가들 사이에는 100년의 갭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 사람들에게 좋은 그림과 나쁜 그림을 구분하라고 한다. 취향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좋은 그림은 단적으로 말해서 좋은작가가 만든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좋은 작가의 기준으로 나는 다음의 네 가지를 제시하고 싶다.

첫 번째는 우선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작가의 의식이 시대의 요구나 시대정신을 그의 작품에서 얼마나 잘 반영하는가 이다. 세 번째는 작가의 생활태도가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바와 일치하는가 이다. 즉 잘 그리고 , 논리적이고, 생활태도의 3박자가 조화롭게 이루어졌는가 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가의 근본이 리얼리티와 휴머니티에 있는가 이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것은 일반인의 생각에는 똑 같이 그린다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겠지만, 그것이 결코 잘 그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묘사가 뛰어나야 하고 , 색채감각이 있어야 하고 균형감각, 그리고 작가가 그 작품에 얼마나 절실하게 메 달렸느냐 하는 절실성 , 질료의 물질성의 문제 등이 세련되게 구사되었을 때 테크鎺이 뛰어나다, 잘 그렸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일반인이 말하는 닮게 그리기는 매우 쉽다. 시간만 투자하면 되는(판화기법, 대형사진이용, 슬라이드 투사 후 묘사 등의 방법으로 누구나 가능하다) 묘사라는 것은 사실 큰 의미는 없다. 오히려 필력이나 조형성이나, 재질을 다루는 감각으로 잘 그리는 기술을 가늠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시대적 감각이나 이론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작가라는 것이 사회의 일부분이고, 또 사회의 잉여물로써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작가를 위해서 생산업에 뛰어 들어, 출/ 퇴근하며 땀흘리고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이 사회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사회에 대한 봉사는 사회, 역사, 민족, 동포애, 인류애 등에 대한 감성과 이론의 뒷받침이 있을 때만이 사람들에게 정서적 위안과 진보된 미적 경험을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부류의 화가가 있다. 하나는 부단히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밝혀주어서 사람들의 생활에 찌들고 현실에 녹슨 감각을 일깨워 주는, 가난하고 배고프지만 아주 통찰력 있는 개안을 가진 화가가 있겠고, 또 한 종류의 화가는 이미 사회가 그것은 아름답다고 인정해 버린, 사회가 힘들게 농사지어 추수한 미적 이념의 떨어진 이삭을 주우며 사회를 따라가는 화가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시대성이나 이론적 근거가 중요하고 화가의 위상과 역할에 어떤 형태로 충실한가에 두 번째 기준을 둔다.

세 번째로는 작가의 생활태도가 자기 작품과 얼마나 일치하는가가 기준이 될 것이다.

작품은 고상한 동양정신과 선을 말하고, 절제와 겸양을 표현하는 작품을 하면서 작가는 안락한 승용차에 서구적인 칵테일 파티나 한다면 이 얼마나 이율 배반적인 일인가?. 아니면 솔직하게 앤디 와홀처럼 "나는 돈을 좋아한다. 나는 화려한 것을 좋아한다." 라고 천명하고 작품도 그에 걸맞게 제작한다면 오히려 힘있고 설득력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네 번째로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리얼리티와 휴머니티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리얼리티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똑같은 묘사라는 형식의 리얼리티고, 두번째 리얼리티는 현상의 리얼리티가 될 것이다. 소위, 사진을 찍기 위하여 곱게 단장을 한 리얼리티인가? 아니면 땀 흘리는 생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모습인가, 또는, 작가가 얼마나 그 표현대상의 처지나 현상에 밀접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가, 즉 땀과 눈물과 노동의 가치가 있는가 라는

기준이 있고 이런 기준에 부합되는 좋은 작가가 만든 작품이야말로 좋은 작품이라 하겠다.

좋은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감상자의 노력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감상자가 작가에 대해서 알 수 있으면 더욱 좋다. 물론, 좋은 작가가 만든 작품은 그 외형만으로도 훌륭하다. 하지만 작품의 내면을 좀더 알고 감상하면 더 큰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아는 만큼 볼 수있다 고 말하고싶다. 좋은 작가는 자기가 깨달은 만큼, 배운 만큼, 본 만큼, 더 나아가서 괴로워 한 만큼 더 좋은 작품을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진정한 작가는 의무적인 타락(구도)을 하기도 한다. 진주처럼 빛나는 작품을 위해서.

좋은 작품을 감상하려면 보는 법도 배워야 하고, 좋은 작가가 누군가를 가리는 능력, 옥석을 구별하는 힘이 필요하다. 보다 더 절실하게 물어보고 글을 통해서 알아내고 스스로의 감상 감각을 추스리며 작품을 감상하기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글을 쓰는 사람도 여기저기서 들은 것을 마구잡이 식으로 써 낼 것이 아니라, 입력된 정보를 적당한 거리를 두고 통찰력을 가지고 걸러내고 날카롭게 판단한 내용을 글로 옮겨 일반대중들에게 올바르게 정보를 전달할 의무가 있다. 잘못 전달된 정보는 차라리 전달되지 않음만 못하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을 하기도 어려우나 좋은 작가가 되기도 어렵다

좋은 감상자가 되기는 더더욱 어렵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생은 어려울수록 빛이 나는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