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드로잉에 대한 단상

드로잉은 인간의 의식, 무의식, 잠재의식 속에 있는 그 어떤 생각과 그것의 형성과정, 활동, 성장, 소멸 등을 갈고리로 끄집어내는 행위를 말한다.

인체의 내면인 머리 속이나 몸 속, 혹은 가슴 속에서 의식은 마치 물 속에서 물고기처럼 둥둥 떠다니는데 그 의식을 끄집어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의식들은 낚시형태의 그 무엇에 의해서 걸려서 나오게 되는데, 잠재의식을 채 내는 낚시술로는 연상이라든지 최면술이라든지 무의식적 토해내기 등의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토해낸 내면을 고착시키는 행위가 드로잉이 될 것인데, 이때 다른 현상의 개입이 배제된 즉각적인 정착방법이 매우 중요하다

드로잉의 묘미는 마치 생선회의 형태에 비유할 수 있다. 생선회란 것은 신선도가 중요시된다. 회의 형식으로 먹을 때는 생선을 바다에서 직접 잡아서 먹을 때가 가장 싱싱하고 맛이 있다.

드로잉의 상태는 생선회처럼 직접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생선을 요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시간과 공간이 개입되면 또는 취향이 개입되면, 양념이 첨가되어야되고, 구워먹거나 쪄서먹거나 소금에 절여먹을 수도 있지만 역시 드로잉의 방법은 생선회의 방법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신선도와 생생함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드로잉에서는 개인의 잠재의식을 종이나 연습장에 옮기는 과정이 중요시된다. 그 과정에서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좀 더 빠르고 간편하고 즉각적으로 옮길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다른 요소의 개입을 배제하기 위하여 속도가 필요하고, 이 때문에 가장 쉬운재료인 목탄, 연필, 콩테같은 재료가 많이 이용된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이런 재료로 빨리 옮길 수 있기 때문에 메모하는 방식으로 옮기는 것을 드로잉의 기본형태로 꼽았고 그런 이유로 준비과정이 어렵지 않은 캔트지, 메모지에 소묘나 밑그림을 드로잉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직접성, 즉각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드로잉은 가능태의 모습을 취하는데 가능태라는 것은, 완벽하고 구성이 치밀하고 완성되어서 더 이상 손볼 데 없이 완전태보다는, 가능성의 모습 어딘가 미흡해 보이고, 정점에 도달하지 않은 상태로서 가능태 중에서 가장 완전태에 근접한 형태가 좋은 드로잉이라고 볼 수 있겠다.

완전태와의 근접성이라는 것이 드로잉의 특징이다. 훌륭한 드로잉작품은 아주 묘한 지점에 있는데 그것은 최대한의 가능태 모습을 하면서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서 허전하면서, 아주 만족스럽고 누구나 봤을 때 조그만 더 가필하면 훌륭한 작품이 나올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을 때이다. 드로잉은 가능태이다.

드로잉은 신체성이다.

신체성이라는 것은 나이브하고 좀더 직접적인, 은유법이 아니라 직설법의 형태를 취하는데 인간의 신체로 이루었다는 것, 인간의 신체가 물감이라든지 붓이 아니라 신체 자체가 도구가 된다는,

육필로서 그려질 수 있는 상태가 드로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신체 그 자체가 도구가 되는 오토마티즘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신체자체가 도구이면서 작품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얘기를 하자면 쉬르 리얼리즘에서 나오는 오토마티즘이나 잭슨 폴록식의 오토마티즘과, 신체자체가 대상이 되는 이브클렌식의 바디프린트의 경우가 도구로서의 신체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될 것이다.

드로잉은 과정이다. 드로잉은 시간성이 중요한 것이다

의식을 끄집어내서 고착시키는 과정 중에서, 의식을 끄집어내고 신체를 통하여 작품으로 옮길 때 어느 시점에서 어떤 방법으로 어느 정도의 속도로 옮기느냐는 시간성이 중요한 것이다.

인간 개인은 가능태이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에 대한 의문을 항상 가지게 된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미술적인 측면으로 국한시킬 때- 어떤 경향의 작품제작성향을 가지고 있고 자기가 왜 그런 작품을 만드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드로잉은 해결책이다.

보통 인간의 경우에는 자기의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의 세계의 거의 십분의 일도 인식하지 못한다고 알려져있다. 인식할 수 없는 내면은 드로잉의 형태를 통해서 그 본성을 알 수 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의 원초적인 모습들을 드로잉이라는 낚시로 채 내서 표현의 장에 옮기는 과정을 통하여 개인성에 직접적으로 접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꿈이라든지 최면술이라든지 연상을 통하여 문득문득 드러나는 것을 글로 메모해놓을 수 있고, 그런 행위는 확장개념으로서의 드로잉이다.

드로잉의 경우는 마치 스냅카메라의 기능과 같아서 순간순간을 포착하고 저장한다. 순간적으로 포착되는 상황들은 마치 고구마 줄기의 처음처럼 많은 뿌리를 캐내는 단서가 되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이런 이유로 스냅사진처럼, 종이에 연필류로 하는 소묘의 형태가 드로잉의 가장 일반적인 경우가 된다.

드로잉에서는 여러 가지 형식적인 면을 취하게 된다. 회화전반에 걸쳐있는 여러 가지 작품형태들이 다 드로잉이 될 수 있다. 미술계에서 인정한 상태에서는 완벽한 회화작품을 페인팅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드로잉의 개념을 확대 해석할 때는 모든 미술전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드로잉을 축소 해석한다면 인간의 행위를 직설법으로 나타낸 소묘나 페인팅, 퍼포먼스, 만들기, 프린팅 등이 될 것이다. 그래서 드로잉은 훨씬 더 감정적이고 직설적이고 원초적이고 다소 단순하고 우습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고 키치적이고 사회적이고 혹은 동물적이기도 하고 토해내놓은 말 실수모음과 같은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인간적이란 말을 사전적인 의미로서 볼 때 동물적이고 원초적이라고 한다면 드로잉 자체는 거칠고 공격적이고 생경하고 정제되지 않고, 통조림으로 제조되지않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코기와도 같은 그런 형태를 취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전화로 대화할 때 각종 메모를 남기곤 하는데 메모지에 그림을 그린다든지 어떤 글자를 쓴다든지 하는데 그때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도상들이- 잠재의식의 빌미를 제공해 주는 도상- 흐트러진 문자와 기호들로 서로 혼재하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토해진 도상, 문자, 기호 등이 섞여있는 상태가 가장 근본적인 드로잉이 될 것이다.

이런 드로잉이야말로 무의식에 가깝고 신선하고 원초적인 형태를 띠게 되는 것이다. 전화를 할 때 '짓'하는 드로잉이라는 것을 그려보자면, 마치 자기 자신의 손을 자기의 입 속으로 집어넣어서 자기의 내면에 떠다니는 무의식을 끄집어내어서 메모지 위에 고착시키는 형태가 될 것이다.

군사 작전 지도라든지 회의록 같은 것을 보면 여러 가지 메모와 문자들과 암호들이 혼재한다. 쓱쓱 써내려간 화살표라든지 공격지점을 표시하는 깃대라든지 표식, 도형, 부대위치, 지형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섞여있는 그림같은데 이것이 드로잉의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개개인의 일상을 그림이나 문자나 기호 등으로 노트하는 것도 좋은 드로잉이 된다.

잠자고 일어나고 세수하고 출근하고 먹고 하는 행위의 나열이나 감성적인 상태의 나열- 자기의 감정들, 분노의 감정, 기쁨의 감정, 무기력한 상태, 암연 속으로 추락해 가는 자신의 모습, 가위에 눌린 형태, 꿈속에서 드러난 예시같은 것- 을 그려내는 것도 좋은 드로잉이 된다.

내면성을 암시하는 일상은 드로잉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고 그 소재들을 드로잉을 통해서 표현함으로서 자기가 어떤 상태인가를 자가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다.

드로잉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면 좀더 정확하게 내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과정이 드러나는 드로잉을 통하여 작가의 잠재의식을 캔버스에 완결된 작품으로 옮기기 까지의 과정에 할당된 시간성을 해독할 수도 있고 그 시간성이 화면의 재료의 구사 상태에 의해서 욺직여지는 과정도 해독해낼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경험과 체험은 개인의 두뇌나 가슴속 잠재의식의 방에 차곡차곡 저장되고 그것이 한 개인의 지성과 행동발달상황과 판단력과 사회생활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자기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추적해가는 방식으로는 드로잉의 방법이 해결책이다.

누가 보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 쓰여진 일기장의 형태가 될 드로잉은 적어도 미술의 제도하에서는 가장 솔직한 일기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다.

온통 그림과 기호와 문자와 행위와 재료와 질감이 뒤범벅되어 있는 상태의 구토물이 드로잉이다. 생활자체가 곧 예술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상태를 평면 위나 미술제도 위에 옮겨 놓았다고 생각해보면 그것이 드로잉이 된다.

수십가지 생활을 하기 때문에 수십가지의 방법의 드로잉을 통해서 개인의 자아에 좀 더 정확히 도달할 수 있다

육필의 형태인 신체 프린트

기계적인 시각인 컴퓨터의 눈으로 보는 드로잉

일기장에 메모하듯이 잠재의식을 드러내는 일기적인 드로잉

군사지도라든지 전화메모라든지 내 생각을 글과 그림 상징기호를 이용해서 문인화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전개도 드로잉

과정이 드러나는 드로잉

백묘법과 몰골법을 응용한 드로잉

여러 가지 신체의 모형을 만들거나 그리는 드로잉

사진을 수십장 붙여주고 그위에 가볍게 만화영화의 기법인 오버랩의 기법의 드로잉

등 다양한종류의 드로잉을 통하여 우리는다각적이고 입체적이며,종합적으로 내면을 분석할 수있다.

드로잉은 직설법이고 신선하고 생명력이고 가능태이며, 신체성, 과정이고 의도와 발상자체이다.